압뒬메지트 1세

최근 수정 시각: (5년 전)

목차
1. 개요2. 개혁안3. 사망4. 자녀5. 여담

1. 개요 [편집]

오스만 제국의 제31대 술탄. 마흐무트 2세의 아들이다.

마흐무트 2세가 결핵으로 사망하고 왕위에 오른 직후 탄지마트 개혁을 실시하였으며, 1843년부터 새로운 궁전인 돌마바흐체 궁전을 세우기 시작하여 1856년에 완공했다.[3]

러시아가 흑해 방면까지 세력을 확장하여 오스만 제국을 위협하자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했으며, 전쟁이 종결된 후에는 백성들에게 시민권을 보장하고 종교에 따른 차별을 없애고자 했다.

2. 개혁안 [편집]

압뒬메지트 1세의 주요 개혁안은 다음과 같다.[4]
  • 징병제 도입
  • 새로운 국기와 국가
  • 서구 재정 시스템 도입
  • 유럽인 판사 등용
  • 대학, 교육부 설립
  • 새로운 의회 창설
  • 노예시장 철폐
  • 동성애 비범죄화
  • 비무슬림에 대한 인두세(지즈야) 폐지
  • 터번 착용 금지, 페즈와 유럽 복식 허용 및 관료 한정 의무화.

3. 사망 [편집]

1861년에 결핵으로 사망하였다. 그의 시신은 야우즈 셀림 모스크에 안치되었다.

4. 자녀 [편집]

자식이 총 26명으로, 역대 오스만 제국 술탄 중 가장 자식이 많았다. 압뒬메지트 1세 이후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술탄들은 이복 형제 압뒬라지즈를 제외하면 모두 압뒬메지트 1세의 아들이다.

5. 여담 [편집]

아일랜드 대기근이 발생하자 아일랜드 측에 식량과 자금을 원조한 적이 있다. 이에 아일랜드인들이 감사 편지를 보내고, 일부 도시에선 도시의 문장에 튀르크를 상징하는 초승달과 별을 추가하는 등으로 보답했다. 터키어 자료
[1] 체르케스의 일파.[2] 체르케스의 일파.[3] 본래 목조건물이던 궁전이 1814년의 대화재로 불탄 것을 청나라원명원처럼 베르사유 궁전을 본 따 훨씬 더 화려하게 재건한 것이다. 결국 국력이 쇠잔한 오스만 제국의 재정에 막대한 타격을 입혀 파산을 초래하기까지 했다. 오스만 판 경복궁 중건인 셈[4] 일부는 보수적인 종교 세력인 울레마의 반발로 시행되지 못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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